부산의 바다는 늘 짠내와 함께 기억된다. 그 짠내는 단순한 바닷물 냄새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손과 시간의 냄새다. 겨울이 되면 그 냄새 속에서 특별히 다른 향이 섞인다. 바로 과메기. 바람에 말리고, 햇살에 말리고, 사람의 기다림에 말려서 만들어진 부산의 겨울 별미다.
겨울 바다의 소리와 냄새
11월쯤이면 부산 남항시장 근처에서 과메기 손질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칼이 생선살을 스치는 소리, 손끝에 닿는 차가운 감촉, 그리고 그 위로 묘하게 달콤한 냄새. “올해 바람이 좋아서 말리기 좋다”는 말이 들리면, 아, 과메기 철이구나 하고 다들 알아듣는다.
이건 단순한 생선이 아니다. 기다림의 맛이고, 계절의 신호다. 과메기가 걸려 있는 줄에는 소금기와 바람이 섞여 있고, 사람들은 그 줄을 바라보며 겨울을 맞이한다. 관련 기사 보기
과메기의 시작, 그리고 부산의 방식
포항에서 유래했다는 건 다들 안다. 하지만 부산의 과메기는 조금 다르다. 남쪽 바람이 만들어내는 습도와 온도의 조합이 달라서인지, 맛이 좀 더 부드럽고 짠맛이 덜하다. 남항시장이나 자갈치 시장 근처에서는 “포항 거보다 부산 게 낫다”는 상인들의 자존심 어린 말이 들린다.
어디서 유래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떻게 이어지는지가 중요하다. 시장 상인들은 한 손에 생선을 들고, 다른 손으로 비닐봉지를 묶는다. 손끝이 얼어붙을 때까지 반복되는 이 리듬이, 부산식 과메기를 만든다.
건조의 미학 — 바람이 만드는 요리
과메기는 기술보다도 바람이 중요하다. 바람이 세면 살이 터지고, 약하면 썩는다. 그래서 상인들은 바람의 결을 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을 본다. “오늘은 해가 덜 뜨니까 조금 더 걸어놔야겠네.” 이런 대화가 부산 시장의 겨울을 채운다.
그 말린 생선이 식탁에 오를 땐, 이미 바다의 시간과 시장의 손끝이 함께 얹혀 있는 거다. 과메기 관련 정보 더 보기
그들이 말리는 건 생선이 아니라 계절이다
바람을 믿고, 기다림을 믿는 일. 어쩌면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과메기를 말리는 상인들의 얼굴에는 묘한 평온이 있다. 그건 시간을 다루는 사람들의 얼굴이다.
부산 시장의 한켠 — 사람 이야기
“한 마리 더 얹어줄게, 그냥 가면 섭하지.” 남항시장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늘 그렇게 따뜻하다. 사람 냄새, 바다 냄새, 기름 냄새가 뒤섞인 골목을 지나면 그 목소리가 울린다. 시장은 소음으로 가득하지만, 그 속엔 묘한 정적이 있다. 무언가가 살아 움직이는 기운.
그곳에서 과메기는 그냥 생선이 아니다. 겨울의 이야기다. 부산시 공식문화뉴스 참고
과메기 먹는 법 — 단순하지만 완벽한 조합
소주 한 잔, 마늘, 초장, 김 한 장, 그리고 상추. 딱 그 정도면 된다. 하지만 순서는 중요하다. 먼저 김을 깔고, 상추를 얹고, 과메기를 올리고, 초장을 살짝 찍어 마늘을 얹는다. 그걸 한입에 넣으면, 짠맛과 단맛, 기름진 감칠맛이 한꺼번에 터진다.
이 맛은 부산 겨울의 정체성이다. 어딜 가든, 누구와 먹든, 이 맛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그날의 온도와 사람의 기분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질 뿐이다.
과메기의 유통과 변화 — 전통에서 직송까지
요즘은 시장에 가지 않아도 된다. 온라인으로 바로 주문하면 다음 날 도착한다. 하지만 냄새와 소리, 사람의 손길이 사라지면 과메기의 의미도 조금 사라지는 것 같다. 냉장 포장 속에서도 여전히 그 바다의 짠내가 남아있긴 하지만, 시장의 바람과는 다르다.
부산의 해산물 직송 시스템은 점점 발전 중이다. 지역 브랜드들은 신선도와 위생을 앞세워 전국으로 과메기를 보내고 있다. 그 덕에 포항뿐 아니라 부산산 과메기도 이름을 알리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련 소식 보기
나는 왜 과메기를 사랑할까
어릴 적에는 이해 못 했다. 생선을 왜 말려서 먹는지, 그 냄새가 왜 좋다는 건지.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그 냄새가 그립다. 그건 단순한 향이 아니라, ‘기다림’의 냄새다. 부산의 겨울이 오는 소리이자, 바람이 불러오는 사람 냄새.
이제는 그 냄새가 나면 마음이 놓인다. 계절이 제자리에 돌아왔다는, 세상이 아직 순환하고 있다는 안도감. 그래서 나는 해마다 겨울이 되면 일부러 시장을 한 바퀴 돈다.
과메기 한 점에 담긴 사람들
그 한 점 안에는 어부의 손, 시장 상인의 숨, 먹는 사람의 추억이 함께 있다. 그래서 과메기는 음식이 아니라 기억이다. 바다의 온도와 사람의 온기가 함께 말려서 만들어지는 부산의 이야기다.
부산의 과메기, 앞으로
세상이 빨라지고, 시장은 점점 사라진다. 그래도 이 바람, 이 냄새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과메기는 부산의 마지막 손맛일지도 모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누군가는 여전히 생선을 매달고 있을 것이다.
그게 부산의 겨울이고, 그게 사람 사는 냄새다.


